Publications

Publications

Issue Brief
2026.04.08
7

우리는 왜 에너지 전쟁에서 지고 있는가

Authors:
우리는 왜 에너지 전쟁에서 지고 있는가
반복되는 에너지 위기 속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해외 화석연료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 칼럼은 에너지 안보를 단순한 자원 확보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재정의하며, 재생에너지·전력망·시장 제도·거버넌스를 아우르는 구조적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또한 현행 법·제도와 정책의 공백을 지적하고, 에너지 안보와 경제·산업 전략을 통합하는 방향의 제도 설계 과제를 제안한다.

■ 위기는 반복되고, 우리는 변한 것이 없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했다. 이란은 즉각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응수했다. 평소 하루 평균 24척이 통과하던 유조선은 4척 수준으로 급감했다. 전 세계 원유 공급의 20%, LNG 거래량의 20~30%가 지나는 길목이 막혔다. 전쟁 전 배럴당 65달러이던 국제 유가는 100달러를 훌쩍 넘어섰고, 일각에서는 200달러가 넘어갈 거라는 경고가 나왔다. IEA는 32개국 만장일치로 비축유 4억 배럴 긴급 방출을 결정했다. 우리나라의 할당량은 2,246만 배럴이었다.

우리나라 정부도 원유 자원 안보 위기 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격상하면서, UAE와의 협의를 통해 최우선 원유 공급을 약속받았다고 발표했다. 비축유 방출 계획도 검토했다. 210일분 이상의 비축유가 있으니, 단기적으로는 버틸 수 있다고 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해온 바로 에너지 절약 캠페인도 등장하였다.

이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1979년 2차 오일쇼크, 1990년 걸프전,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고유가 시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LNG 수급 위기 등 반세기 동안 여섯 번의 충격이 있었다. 하지만 매번 우리나라는 고통이 지나가면 다시 해외 화석연료 의존 구조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그 수순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로 의존성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구조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원의 93% 이상(2023년 기준)을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 수입 원유의 70% 이상이 중동산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우리나라 에너지 시스템 전체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번에 다시, 그리고 또 새삼스럽게 확인하고 있다.

■ 세 가지 응답, 모두 부족하다

이 위기 앞에서 우리 사회의 응답은 세 갈래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만이 답이라는 진영, 그 수사를 선언으로 소비하는 정치권, 그리고 여전히 전통적 자원 확보가 정답이라는 진영이다. 하지만 세 갈래 모두 같은 결함을 공유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리는 것과 에너지 안보가 강화되는 것은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전력망이 취약하면 접속조차 못 하고, 시장 제도가 변동성을 흡수하지 못하면 오히려 불안의 요인이 된다. 방향은 옳지만 아직 정확한 지도가 마련되지 않은 불안한 항해다. 정치권의 선언도 그 자체로 나쁘지 않다. 문제는 법률·재원·거버넌스 설계로 결합하지 않을 때다. 선언은 책임을 지지 않고, 임기가 끝나면 다른 선언으로 덮인다. 전통적 자원 확보론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것은 반복을 줄일 수 있을 뿐, 반복의 구조를 끊지는 못한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계속 노출된 채 관리하는 전략과, 그 노출 자체를 줄이는 전략은 출발점이 다르다.

에너지 전환은 설비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고, 선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다. 이 층위를 함께 다루지 않는 어떤 응답도 우리를 반복에서 꺼내지 못한다.

■ 개념이 바뀌지 않으면 정책도 바뀌지 않는다

왜 반복되는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에너지 안보를 잘못 정의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 담론에서 에너지 안보는 오랫동안 “화석연료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의 문제였다. 전략비축유를 며칠 치 쌓아두느냐, 도입선을 몇 개국으로 다변화하느냐, LNG 장기계약 비율을 어느 수준으로 유지하느냐 등의 전통적인 질문들이 에너지 안보 논의의 전부였다.

그러나 에너지 안보 연구는 이미 1990년대부터 이 정의를 넘어서고 있었다. Cherp와 Jewell(2014)이 IEA와 함께 정립한 다차원 프레임워크는 에너지 안보를 세 축으로 구성한다. 공급 취약성의 최소화, 시스템 견고성, 그리고 충격 회복력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에너지 안보는 특정 연료의 확보량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전달하고, 소비하는 전체 시스템이 외부 충격에 얼마나 견고하게 설계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이 관점에서 재생에너지는 기후 대응 수단인 동시에 에너지 안보 수단이다. 온전히 국내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자원 수입 의존도를 구조적으로 낮추는 유일한 방법은 국내 생산 에너지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고, 현실적인 대안은 재생에너지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절반만 맞는 이야기가 된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아무리 늘려도, 그것을 실어 나를 전력망이 취약하다면 에너지 안보는 강화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해 태양광·풍력 발전량의 변동성이 지나치게 심화된다면, 변동성을 흡수할 시스템이 없다면, 재생에너지 확대는 오히려 공급 불안정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안보는 발전원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전력망, 시장 제도, 수요 관리, 거버넌스가 함께 진화해야 한다. 문제는 이 인식이 우리나라의 법체계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 법이 바뀌지 않으면 시스템도 바뀌지 않는다

2006년 「에너지기본법(현 에너지법의 전신)」 제3조는 에너지 안보 개념을 법정화했다. 그러나 2010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이 조항은 부칙을 통해 삭제되었다. 이후 15년간 대한민국 법률에서 에너지 안보는 개념적으로 잠복해 있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2조 제10호의 ‘에너지 전환’ 정의 안에 ‘에너지 안보’라는 표현이 나오기는 하지만, 독립 정의 조항도 후속 구현 조항도 없는 선언적 나열에 그친다.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안보 수단으로 연결하는 실질적인 법적 고리는 여전히 없다.

「에너지법」, 「전기사업법」 어디에도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안보 강화 수단으로 명시한 조항이 없다. 심지어 현행 「에너지법」 제5조에는 이미 폐지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법령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라는 문구가 남아 있을 정도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은 목적 조항에 ‘탄소중립화에 기여하며’라는 문구가 추가되었지만,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 저감이나 에너지 안보 기여로의 명시적 연결은 찾을 수 없다.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제1조의 목적 조항에는 “에너지원 다양화”와 “환경친화적 전환”이라는 문구는 있지만,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 저감”이나 “에너지 안보 기여”라는 표현은 없다.

이 공백은 세 층위로 구조화되어 있다. 첫째는 개념의 공백이다. 현대적 의미의 에너지 안보가 법에 제대로 정의되어 있지 않다. 둘째는 법제의 공백이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안보를 연결하는 실질적 법적 고리가 없다. 셋째는 거버넌스의 공백이다. 2025년 10월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으로 재생에너지는 기후부가, 석유·가스는 산업통상부가 관할하는 이원적인 구도가 굳어졌다. 이 세 공백을 동시에 메우지 않으면, 개념이 아무리 정교해지고, 전략이 아무리 세련되어도 위기 상황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 우리나라가 외면해 온 것들, 그리고 지금 해야 할 것들

국제적인 에너지 안보 연구가 1990년대부터 개념을 진화시켜 온 동안,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 담론은 화석연료 확보와 원전-재생에너지 구도의 정쟁 사이를 오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리셋되었고, 5년의 임기 안에 완성될 수 없는 에너지 전환은 늘 다음 정권의 과제로 미뤄졌다.

지금 세계는 글로벌 안보 체계의 전환기에 있다. 에너지 지정학의 지도도 바뀌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기후 목표만이 아니라 지정학적 무기화로부터의 독립 전략으로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전략 자산이 되었다. 미국 IRA, 유럽 그린딜, 일본 GX 정책 모두 에너지 전환을 경제 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확충, 산업 탈탄소화를 담아냈다. 즉, 경제 영역에서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은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안보 영역은 아직 비어 있다.

지난 4월 6일 국무회의에서 발표된 「에너지 대전환 추진계획」은 이 방향에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안보의 틀로 공식화하고,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를 조기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 계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익숙한 공백이 보인다. 이행을 강제하는 법적 구속력, 재원 조달의 구체적 메커니즘, 그리고 재생에너지 설비가 실제로 계통에 연결되어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전력망 전략—이 세 가지의 구체성은 여전히 미흡하다. 여전히 정치적 수사에 머무른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제와 안보, 두 축이 함께 서지 않으면 전환도 안보도 완성되지 않는다. 선언이 전환을 만들지 않는다. 구속력 있는 메커니즘이 전환을 만든다.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금 조달 구조가 있고, 이행을 강제하는 법적 기반이 있고, 위기 시 작동하는 거버넌스가 있을 때 비로소 전환이 현실이 된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네 가지다.

첫째, 에너지 안보 법제의 재설계다. 「에너지법」에 에너지 안보의 현대적 정의를 적용해야 하고, 「탄소중립기본법」과 NDC를 안보 전략과 동기화하며,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에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전략 자산으로 포함해야 한다. 「전기사업법」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재생에너지의 에너지 안보 기여도 지표를 의무화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들이 법에 반영될 때, 위기 상황에서 재생에너지가 국가 에너지 안보 자산이 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구속력 있는 재원 조달 구조가 필요하다. 일본 GX 채권처럼, 녹색 채권 발행의 법적 근거와 국책은행의 녹색 포트폴리오 의무화, 탄소부담금의 법제화가 없으면 선언은 선언에 머무르고 만다.

둘째, 재생에너지가 실제로 에너지 안보의 주역이 되기 위한 시스템 조건의 구축이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것과 에너지 안보가 강화되는 것은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전력망이 취약하면 재생에너지는 계통에 접속할 수 없다. 기후변화로 발전량 변동성이 심화되면 안정적 공급이 흔들린다. AI와 데이터센터의 급격한 전력 수요 증가는 이 방정식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에너지 고속도로, 지역 분산망, 해상풍력 연계 계통의 확충은 기술 투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 인프라 투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셋째, 산업 탈탄소화와 지역 산업도시 전환을 에너지 안보 전략의 틀 안에서 풀어야 한다.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같은 에너지 집약 산업의 탈탄소화는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의 핵심 과제다. 이 산업들이 화석연료 의존을 낮출 때, 우리나라 전체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도 낮아진다. 문제는 이 전환이 특정 지역의 산업 기반 전체에 충격을 준다는 점이다. 포항과 광양의 철강, 여수의 석유화학, 그리고 울산과 대구로 대표되는 제조업 기반 도시들은 탈탄소 전환 과정에서 심각한 고용 충격과 산업 공동화를 겪을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을 에너지 안보 관점으로 접근하면, 이 지역들은 위기 지역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 거점으로 재정의될 수 있다.

넷째,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비전으로 통합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기후·에너지·산업·지역·안보는 서로 다른 부처의 서로 다른 정책으로 분절되어 존재해 왔다. 기후와 에너지는 각각 환경부와 산업부의 소관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통합되었지만, 산업의 탈탄소화는 여전히 산업부의 입김이 거세고, 지역 발전은 행안부와 국토부가 각자 다루고 있다. 이 분절된 구조 안에서는 어떤 정책도 시너지를 만들지 못한다.

■ 에너지 전쟁에서 이기는 나라의 조건

그동안 우리나라는 위기가 오면 전사적인 대응을 하지만, 위기가 지나면 언제 그랬듯 제자리로 돌아갔다. 개념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념이 바뀌지 않으니, 법이 바뀌지 않았고, 법이 바뀌지 않으니, 시스템이 바뀌지 않았다.

에너지 안보는 화석연료 확보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전달하고, 소비하는 전체 시스템이 외부 충격에 얼마나 견고한가의 문제다. 재생에너지는 그 시스템의 핵심 자산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난다고 에너지 안보가 자동으로 강화되지는 않는다. 전력망이 함께 강화되어야 하고, 시장 제도가 변동성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하고, 산업이 탈탄소의 방향으로 구조를 바꾸어야 하고, 지역이 그 전환의 거점이 되어야 하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법과 거버넌스가 작동해야 한다.

올해 이란 사태 이후의 세계에서 에너지 안보는 군사 안보와 같은 층위의 국가 과제가 되었다. 기후위기의 당위를 현실의 언어로 번역하면 에너지 안보이고, 에너지 안보를 경제 전략으로 번역하면 산업 경쟁력이 되며, 산업 경쟁력은 다시 지역의 일자리와 삶으로 이어진다. 이 연결 고리를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통합 비전이 있을 때 비로소 에너지 전환은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으로 자리를 잡는다. 에너지 전환이 일자리의 문제이고, 내 지역의 미래이고, 다음 세대의 안보임을 체감할 수 있을 때 국민의 지지가 따라올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이 선택할 차례다. 다음 위기가 오기 전에.

#에너지 안보#호르무즈 해협#원유 자원#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