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환경이나 기후변화를 고려한 경영은 기업 이미지 개선이나 사회적 책임을 목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성장을 위한 손익 계산이 맞물린 사안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가 바람직한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왜곡된 정보를 마케팅에 사용하는 ‘그린워싱’이 종종 목격되기 때문이다. ESG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기준 없이 ESG 관련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투자가 이루어지면 실제 가치보다 과대평가된 ‘그린 버블’의 우려가 있다.
넷 제로와 ESG의 대두: 그린워싱의 유혹
‘선행을 통해 성장하라’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실천하기라도 하듯, ‘넷 제로(net zero)’와 ‘ESG(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가 단연 화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환경이나 기후변화를 고려한 경영은 기업 이미지 개선이나 사회적 책임을 목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성장을 위한 손익 계산이 맞물린 사안이 되었다. 미국의 애플 사는 2030년까지 공급망과 제품 100%에 대해 탄소 중립을 선언했고, 국내에서도 카카오와 엔씨소프트는 ESG 위원회를 별도로 설립했다. SK 그룹 6개사는 작년에 한국 최초로 신재생 에너지 100%를 목표로 하는 RE100에 가입하기도 했다.
이는 소비 문화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이왕이면 좋은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착한’ 소비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며 기업들도 친환경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가 마냥 바람직한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왜곡된 정보를 마케팅에 사용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이 종종 목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전히 플라스틱 병에 제품을 판매하면서 라벨만 종이로 바꾼 뒤, “Paper bottle”이라는 문구를 집어 넣어 소비자들이 종이 병이라고 착각하도록 만든 화장품 회사의 사례는 유명하다.
ESG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기준 없이 단지 ESG 관련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투자가 이루어지면 실제 가치보다 과대평가된 ‘그린 버블’의 우려가 있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 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한 ESG 채권 발행이 세계 각국에서 급증하며, ‘ESG 워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린워싱과 유사하게, ESG 투자 전략이 불투명하거나 기대와 불일치하게 자산을 운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일례로 덴마크의 풍력발전 회사 오스테드의 경우 지난 몇 년 간 별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했으나, ESG 포트폴리오 구성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오스테드에 대한 투자가 당연시되고 있다. 경영과 투자에 실체가 있는지 잘 살펴 보아야 하는 이유다.
이니스프리는 ‘페이퍼보틀’ 제품을 출시하였으나 내부에 플라스틱 용기가 함께 제공되고 있어 논란이 되었다. ▲ 이미지 : ⓒ Korea Herald
기후변화 대처 그린워싱의 사례
석유화학 대기업들 사이에서 최근의 ‘넷 제로’ 선언은 거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 배경에는 기후변화 대응을 향한 시장 시프트가 자리하고 있다. 시장의 변화가 분명하게 감지되는 상황에서 석유, 가스, 철강 등 기후변화의 주범이라는 평가를 받는 기업들의 경우 지금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T 기업들이나 일반 회사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품 생산이나 경영 패턴을 혁신함으로써 기후변화 대처를 꾀할 수 있으나, 기업 목적 자체가 온실 가스 생성과 직결된 이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는 그린워싱의 유혹이 더 크다.
그린워싱은 여러 유형으로 자행된다. ‘넷 제로’나 ‘탄소 중립’을 선언하면서 실상은 실체가 없거나 넷 제로 활동의 범위를 좁혀 교묘히 포장하는 경우도 있고, 목표가 너무 거창한 나머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한편으로는 다른 사업상의 이유로 내린 결정을 탈탄소를 위한 행동인 양 포장하는 경우도 있다.
BP의 경우 이미 일찍이 기업명을 ‘British Petroleum(영국석유회사)’에서’ Beyond Petroleum(석유를 넘어)’으로 변경하며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2050 넷 제로를 선언하였으며, 뒤따라 로열 더치 쉘과 토털, 엑손, 셰브론 등 메이져 기업들이 넷 제로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들의 목표를 잘 뜯어보면 사실과 다르게 포장한 흔적이 보인다. 화석 연료인 천연가스가 여전히 포함되어 있거나 아직 상용화가 요원한 CCS에 계획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넷 제로를 선언한 쉘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이 아닌 ‘탄소 집약도’를 지표로 삼고 있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2030년까지 집약도는 감소할지 몰라도 천연가스 생산량을 20%나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최근 네덜란드 법원에서는 쉘의 계획이 넷 제로를 달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배출량의 절대적 양을 감소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Southern California Gas(이하 SoCal Gas)는 천연가스만을 주업으로 삼는 미국 유틸리티사다. 미국은 천연가스 부존량이 워낙 풍부한 데다, 발전 시 천연가스는 석탄에 비하여 온실가스 배출량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가스회사들은 청정 에너지 미래에 다리를 놓아 주는 “교량 연료(Bridge Fuel)”이라며 천연 가스를 옹호하곤 한다. 하지만 넷 제로라는 어려운 목표 앞에서 이 역시 그린워싱에 지나지 않는다. SoCal Gas는 최근 개혁을 선언하며 “재생 천연가스(renewable natural gas)”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했다. 목축업이나 음식물 쓰레기, 하수 처리장에서 발생하는 바이오메탄을 이용해 현재 가스 수요를 대체하겠다는 논리다.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런 시설의 경우 대기 및 수질 오염의 문제가 따라올 뿐더러 전체 가스 수요량의 극히 일부만 담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린워싱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SoCalGas는 폐기물, 바이오메탄 등을 이용하여 renewable gas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하였지만, 이는 전체 가스 수요량의 극히 일부만 담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린워싱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 이미지 : ⓒ SoCalGas
한국의 SK 이노베이션도 최근 논란이 되었다. ESG경영 강화를 위해 북미 지역의 셰일가스 광구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사실 그 이면에는 수 년간 적자였던 손익계산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가치가 떨어져 매각하는 것이 이득인 상황인데 탈탄소 전략이라고 홍보한 셈이다.
그린워싱은 비단 사기업만 자행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나 공기업들도 기후변화 정책 수립에 있어 실체 없는 포장을 하곤 한다.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행동 촉구에 대한 국제사회와 시민 사회의 압박이 점점 거세지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 영국에서 UN 기후변화 협약(COP26)이 열린다. 그런데 영국 정부는 스폰서 선정에 있어 친환경적인 않은 기업의 이미지를 그린워시해 주었다며 친환경 단체들의 날선 비판을 받았다. 주 스폰서로 선정된 레킷(Reckitt)은 세정제, 방향제 상품인 데톨(Dettol)이나 에어윅(Air Wick)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모기업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기업이 결코 기후변화에 긍정적인 기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품 생산에 엄청난 양의 팜유를 소비하는데, 팜유 생산으로 인한 토지 전용과 삼림 파괴는 익히 알려져 있다.
최근 넷 제로 선언을 한 각국 정부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넷 제로를 선언했지만 어떻게 이를 달성할지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낸다. 운용 자산 785조원에 달하는 국민 연금은 여전히 국내 석탄 발전 금융 제공 1위를 기록했으며(2009-2020.6 기준), 한전은 각종 비판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석탄 발전 사업 투자 및 지원을 강행하여 논란이 되었다.
중국도 비슷하다. 넷 제로 목표를 내세우고 있으나 올 상반기 세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가파른 상승세로 온실가스를 생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유사하게 개발도상국 석탄 화력발전소 사업도 지원함으로써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보며 일단 선언은 했으나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실질적인 행동은 뒤로 미루고 있는 셈이다.
그린워싱을 막는 방법: 핵심은 투명성
그렇다면 이러한 그린워싱 관행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친환경 제품의 그린워싱 관행에 대해서는 각국 정부가 소비자 보호 목적으로 각종 규제책을 마련하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그린워싱을 비롯한 다양한 허위 마케팅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우는 규제를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경우 2008년 제정된 불공정 거래에 대한 소비자 보호 규제(Consumer Protection from Unfair Trading Regulations)가 그 근거가 되며, 최근 경쟁시장국(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 CMA)에서 시장 조사를 통해 올 여름쯤 본격적인 그린워싱 가이드라인이 나올 예정이다. 최근 프랑스도 세계 최초로 그린워싱 자체에 벌금을 물게 하기로 한 사례가 있었다.
국내의 경우 2013년경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필요성이 대두된 바 있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올해는 ESG가 주목되며 한국형 ESG 평가 가이드라인 K-ESG가 기획되기는 했는데, 국제 기준과의 부합 여부 등 추후 성과는 지켜봐야할 듯하다.
정부의 규제나 가이드라인만으로 그린워싱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포스코는 최근의 K-ESG 지표 평가에서 1위를 달성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포스코는 국내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1위의 기업이며, 지금도 삼척에 석탄 화력발전소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포스코가 K-ESG 1위를 내세운다면 오히려 그린워싱을 부추기는 꼴이 된다.
결국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경제 행위자들이 스스로 넷 제로나 ESG에 대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 마련일 것이다. 즉, 이러한 목표를 선언했을 때 과연 그것이 얼마나 타당한지 누구나 객관적인 데이터에 접근하여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넷 제로 목표의 경우 넷 제로의 범위나 달성 방법, 투명성 등이 그 기준이 된다. 즉, 어떤 온실가스를 포함시키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에 대해 감축할 것인지, 시간적 범위는 어떠한지를 고려해야 한다. 2050년까지 넷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경우 그 이후의 계획은 있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넷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 제거, 오프셋을 어떤 식으로 결합할 계획인지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넷 제로 목표까지의 활동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지 모니터링할 기제가 있는지도 보아야 한다. 평가와 모니터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들도 있다. 온실가스 및 기후변화 관련 지배구조, 전략 등을 공개하는 플랫폼인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온실가스 저감의 기술적인 방법론을 제공하는 ‘과학기반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 표준화된 방식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지원하는 ‘온실가스 프로토콜(Greenhouse Gas Protocol)’ 등은 모두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에 반해 ESG는 아직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벤치마크가 될 수 있는 사례는 유럽연합의 ESG 관련 법안으로, 최근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일례로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에서 개발한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제(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 SFDR)’는 금융 시장 참여자들에게 하여금 다양한 수준에서 지속가능성 관련 데이터와 정책을 평가하고 공개하는 의무를 지우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기후변화와 관련된 재무정보 공개를 위한 태스크포스(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CFD)’ 역시 일관적이고 표준화된 정보 공개를 추구하지만, TCFD는 지속 가능성 전반에 초점을 맞춘 SFDR에 비해 기후변화에 집중한 권고안이다. 이렇듯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은 시장 참여자가 누구나 해당 ESG 목표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2021년 3월부터 EU에서는 금융기관 대상 지속가능금융 공시제도(SFDR)가 발효되었다. ▲ 이미지 : ⓒ Factset Insight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노력이 노력이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불과 최근부터다. 그렇다 보니 지금은 유행처럼 다짐을 하고, 선언을 하고, 이를 홍보한다. 하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건 그린워싱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까지 굴러온 탄소 기반의 경제를 근본적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변모시키려면, 시스템 자체에서 위장된 환경주의를 몰아낼 수 있어야 한다. 탄소 관련 ESG정보공개 의무를 강화하는 등 투명성 강화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
객원 칼럼니스트 윤정훈님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EcoRebates의 컨설턴트로 근무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졸업 후 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 에너지, 기후변화 정책을 공부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환경과 에너지, 기후변화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