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35 NDC, 규제 프레임을 넘어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 NDC와 경제정책, 이제는 하나다정부가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립을 위해 40%대부터 67%까지 네 가지 후보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 논의를 지켜보면서 기시감이 든다. 여전히 “얼마나 줄일 것인가”라는 숫자 싸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부담을 호소하고, 환경단체는 더 높은 목표를 요구한다. 정부는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다.그러나 이제 NDC와 경제정책 간의 거리는 사실상 없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성장전략에도 재생에너지 확대와 산업 탈탄소화가 핵심으로 포함되었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CBAM),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이미 기후정책을 경제정책의 중심에 놓았다. 우리만 NDC를 여전히 “환경 프레임”으로만 다룰 수 있는가? 답은 명확히 '아니다'이다. ■ 여전히 과거에 머문 정부의 NDC 프레임최근 환경부의 국회 기후특위 업무보고를 보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부문별 감축 과제는 나열했지만, 어떻게 기업과 국민을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율을 확대한다고 하면서도, 이를 통해 조성되는 수조 원의 재원을 어떻게 산업 전환에 재투자할지는 모호하다.더 큰 문제는 NDC 논의가 여전히 ‘목표 수치’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40%냐 61%냐를 놓고 대립하지만, 정작 그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재하다. 마치 1970년대 수출 목표액을 정하듯, 숫자만 정해놓고 “알아서 달성하라”는 식이다. ■ NDC, 새로운 경제성장 지표로 전환해야이제 발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NDC는 부담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의 척도다. 과거 우리가 경제성장률과 수출액으로 경제 성과를 측정했다면, 이제는 탈탄소 생산공정과 녹색기술 경쟁력 등 NDC 목표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지표가 되어야 한다.글로벌 시장은 이미 변했다. 애플은 협력업체에 RE100을 요구하고, 폭스바겐은 배터리 공급망의 탄소중립을 조건으로 건다. 탄소감축 실적이 없으면 수출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왔다. 이런 상황에서 NDC를 여전히 ‘환경 규제’로만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특히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에서 NDC는 생존의 문제다.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보호주의 무역 기조 전환을 단지 글로벌 무역환경 리스크로만 보지 말고 새로운 기회,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이후 표류하며 잃어버린 기간을 만회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 통합된 정책 대전환이 시급하다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부, 기재부 등 관련 부처가 완전히 통합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NDC 목표를 설정하는 부처와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부처, 예산을 편성하는 부처가 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구체적으로 ‘2035 녹색전환 통합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 전략에는 NDC 목표뿐 아니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산업별 전환 로드맵, 필요한 재정 투자 규모, 지원 프로그램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관련 부처가 공동으로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둘째, ‘선(先)지원 후(後)규제’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지금처럼 목표만 제시하고 “알아서 달성하라”는 방식으로는 산업계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없다. 먼저 충분한 지원책을 제시하고, 기업들이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후에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예를 들어, 2025년부터 2028년까지 3년간은 ‘골든타임’으로 설정하고, 이 기간 동안 녹색전환 투자에 대해 세액공제, 무이자 정책자금 지원, 전환 실패 시 손실보전 등 파격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 NDC, 구체적 실행방안과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체적인 숫자와 계획이 필요하다.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2035년까지 10년간 정부 300조 원, 민간 700조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전환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것이다.재원 조달 방안도 명확하다. 우선 배출권 유상할당 확대로 발생하는 재원과 녹색채권 발행으로 추가 재원을 조달하고,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민간투자를 레버리지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이 자금은 산업별로 차별화된 전략에 따라 배분한다.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집약 산업에는 공정전환 직접지원을,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에는 RE100 전환지원을, 중소기업에는 컨설팅과 자금을 패키지로 제공한다. 특히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DRI 전기로 확대와 같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기술에는 개발비용의 70% 이상을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 ■ 산업계 설득전략: “함께 가면 더 멀리 간다”산업계의 우려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당장의 비용 부담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예를 든다면, 정부가 산업계에에게 통 큰 약속을 해야 한다. Zero Cost(초기 전환비용 제로), Zero Risk(전환 리스크 제로), Zero Regulation(전환기업 규제 면제), Zero Delay(행정 지연 제로)를 보장하고, Plus Profit(녹색 프리미엄), Plus Market(신시장 우선권), Plus Technology(기술이전), Plus Recognition(글로벌 인증)을 제공하는 것이다.실제로 이미 선제적으로 전환에 나선 기업들이 성과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전기차 전환으로 테슬라와 경쟁하는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었고,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았다. SK하이닉스는 RE100 전환을 통해 글로벌 고객사의 신뢰를 확보했다. 이들의 성공이 증명하듯, 녹색전환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고,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 기업의 각성: “지원만 받고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그러나 정부의 파격적 지원만이 해답은 아니다. 기업 스스로가 근본적 변화 없이는 아무리 많은 지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여전히 ESG를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화려하게 만들지만, 실제 사업전략과 투자 결정에서는 여전히 단기 수익성만 따진다. RE100을 선언하면서도 실제 재생에너지 전환은 미루고, 탄소중립을 약속하면서도 구체적 로드맵은 없다. 이런 ‘그린워싱’으로는 정부가 아무리 지원해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대한한국은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뼈아픈 경험을 겪고 있다.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생산성 증가율은 OECD 최하위권이다. 왜 그럴까? 정부 지원금을 따내는 데만 집중하고, 진짜 혁신은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녹색전환에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기업들이 진정으로 변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정부가 막대한 재원을 지원한다 해도, 기업이 변하지 않으면 그저 연명하는 좀비기업으로 도태될 것이다. 반대로 기업이 진정으로 각성하고 전환에 나선다면, 정부 지원은 강력한 촉매제가 되어 글로벌 녹색 챔피언을 만들 수 있다. 한국 기업들에게 묻고 싶다. 정부가 지원하면 그저 받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지렛대 삼아 글로벌 녹색 리더가 될 것인가? 2035년의 승자는 가장 많은 지원을 받은 기업이 아니라, 가장 빠르고 과감하게 변화한 기업이 될 것이다. ■ 국민과의 소통: “당신의 미래가 달라집니다”국민들에게도 명확한 비전과 혜택을 제시해야 한다. NDC 61% 달성이 단순히 지구를 위한 선행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 자녀의 삶을 바꾸는 일임을 설득해야 한다.녹색전환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인지, 이들 일자리의 평균 임금이 기존 제조업보다 높다던지 하는 구체적인 수치 제시가 필요하다. 또한 에너지 자립을 통해 전기요금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기후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도시에서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야한다. ■ 글로벌 리더십: “First Mover Advantage”한국은 이미 반도체, 배터리, 조선 등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이제 녹색전환에서도 선도국가가 될 수 있다. 특히 제조업 강국이면서 동시에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한국의 경험은, 개도국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다.2035년 NDC 61% 이상을 달성한다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선진국 수준의 탄소감축을 달성한 국가가 된다. 이는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수조 달러 규모의 글로벌 녹색시장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녹색기술과 전환 경험이 새로운 수출 상품이 되고, K-Green Deal이 K-Pop처럼 세계적 브랜드가 될 수 있다. ■ 정치적 리더십: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NDC는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려서는 안 되는 국가 장기전략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2035 NDC를 초당적 과제로 인식하고 협력해야 한다. 국회는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통해 NDC 목표를 법제화하고, 필요한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특히 국회 기후특위는 단순한 감시·견제 기구를 넘어, 정부와 함께 정책을 만들어가는 협치 기구가 되어야 한다. 여야 정치인들이 NDC 목표를 놓고 정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 NDC가 곧 성장전략 목표인 시대2035 NDC는 단순한 환경 목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10년을 결정하는 경제·사회 대전환 전략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규제 프레임에 머물러 갈등하고 지체할 것인가, 아니면 NDC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 도약할 것인가.답은 명확하다. NDC 61% 이상의 도전적 목표를 설정하되, 이를 달성하기 위한 파격적인 지원과 통합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부, 기재부 등 각각의 정부부처가 한 목소리로 “2035년 탄소중립 선도국가 대한민국”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큰 규모의 녹색전환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NDC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고, 규제가 아니라 기회이며, 부담이 아니라 경쟁력이다. NDC가 곧 GDP인 시대, 그 전환을 주도하는 국가가 21세기의 승자가 될 것이다. 2035년, 대한민국이 녹색강국으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 첫걸음이 바로 지금, 2035 NDC를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다.
2025.09.24 / 이주헌
조회수 494